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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안 먹어도 배부른 까닭

지난주에 아이티에 계신 탁 선교사님이 이달 치 식량을 샀다고 사진을 보내주셨다. 이달에는 평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식량 구매 자금을 보낼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쌀, 콩, 옥수숫가루, 식용유, 스파게티, 설탕에 세탁비누, 화장지 등이 트럭에 가득 찬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한동안 목이 메었다. 그리고 정말 ‘안 먹어도 배부른’ 경험을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난을 온몸으로 견디는 아이티 사람들, 그 혹독하고 잔인한 환경 속에서 더욱 불안하게 살아가는 고아들을 넉넉히 먹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풍성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쌀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쌓아놓은 식량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랜만에 마음이 푸근하고 넉넉해졌다.   아침에 죽 먹고, 저녁에 물만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에게 다음 끼니에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은, 과식으로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풍요로운 땅에서 사는 이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이, 늘 아이들의 먹거리를 근심하는 우리에게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신 후에 제자들이 먹을 것을 드렸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다.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조차도 육체적인 양식이 필요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첫째가는 양식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기피 대상이었고, 스스로 대인기피증이 있던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며 온 동네를 뛰어다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 아마도 예수님께서 먹지 않아도 배부름을 느끼게 한 이유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   아이티 수도가 비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아이티는 민간인의 출입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감히 위험을 무릅쓴다면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로 북부지역의 캡헤이션 공항까지 가서 헬리콥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지만, 일 인당 편도 2500달러의 비용이 들고, 헬리콥터가 여러 번 갱들의 총격을 받은 적이 있어 포토프린스까지 가는 길은 사실상 막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 가운데, 현지에 남아계신 탁 선교사님을 통해 식량을 사서 나눠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따름인데, 후원자들의 넉넉한 사랑으로 이달에는 더욱 풍족하게 준비할 수 있어 마치 부활절만큼이나 큰 위안이 되어, 우리가 안 먹어도 배부른 듯한 경험을 하게 됐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먹이셨다. 그것도 배불리 먹이셨다. 사람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육신의 굶주림도 채워주셨다. 광야에서 수많은 청중을 배부르게 먹이셨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을 위해 해변에서 생선을 구우셨다.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은 사람들의 끼니에 관심이 있으셨고 그분의 식탁은 언제나 풍성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이티 고아들도 배불리 먹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을 먹일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잘 먹고 배우며 자랄 수 있다면, 우리는 안 먹어도 배부른 행복을 계속 누릴 것이다. 이 행복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지만, 배고파도 울지 않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안 먹어도 배부른 시간이 오래오래, 자주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까닭 아이티 고아들 그때 예수님 이후 아이티

2025-04-24

[기고] 준비 안된 이별의 빈자리

누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12월치고는 따뜻했지만, 잔뜩 흐렸다.     허겁지겁 먼길을 달려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한 병원 신경과학 중환자실에서 만난 누나는 혼수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여러 개의 주사를 맞고 있었다. 아무 반응이 없는 누나는 기계에 의지하여 숨을 이어갈 뿐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수많은 기계가 시시각각 그의 상태를 점검하는 중에 산소와 알지 못할 약물들이 희망을 희석하더니 끝내 누나는 깨어나지 못했다.   하루를 지나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매형과 가족들이 모여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로 동의했다. 산소호흡기가 제거된 후 14분이 지나자, 누나의 상태를 보여주던 모든 그래프가 수평선으로 바뀌었다. 조금씩 낮아지며 애태우던 숫자들이 파르르 떨며 꺼지더니 병실로 어둠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슬픔보다 더 큰 이별의 무게가 우리를 누르고 있었다. 누나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날까지 친지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보냈다. 워싱턴에 사는 아들은 고모가 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 임종하고, 장례식 전에 집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고모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집에서 받았다며 또 통곡했다.   나보다 세 살 위의 누나는 사십여 년 전에 미국에 이민왔다. 그리고 부모님을 초청하고, 우리 형제가 다 미국에 자리를 잡는데 넉넉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신앙심이 깊어 이민 초기에 아버지를 도와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고, 찬양을 좋아하고 잘해서, 집이나 교회에서 찬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회 성도와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해서 인근에 누나의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나가 출석하던 교회는 매년 아이티 후원 헌금을 한다. 지난해 가을, 올해에는 예년보다 많은 헌금이 되었다며 누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이티 고아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했다.     우리는 새해 1월에 누나의 교회를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누나는 성탄절을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교회 회중 앞에 차갑게 누운 것이다.     장례 예배는 조문객들이 큰 예배당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됐다. 모두 너무 놀라며 한결같이 슬퍼했다. 매형에게도 누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교회의 모든 이들에게 누나의 빈자리는 참 클 것이다. 그러나   누나는 나에게 가장 큰 빈자리를 남기고 갔다. 아이티 사역을 하면서 아내와 어머니와 누나의 기도가 큰 기둥이 되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우리 아이티 사역을 더욱 세세히 묻고 기도했다. 아이티에 가면 가는 대로,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서로 기도의 파트너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로에게 기도의 동반자였던 누나를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작스레 하늘 찬양대로 부르신 것이다.아이티가 갱단에 의해 폭력적 상황이 되어가고 있을 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누나는 문자 메시지로 아이티 상황을 물어왔고, 기도했다. 그렇게 가까이서 기도해 주던 기도의 동역자가 너무 서둘러 하늘로 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누나가 천국에서도 여전히 우리와 아이티 고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준비 안 된 이별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기도의 동역자가 있어 그분들의 기도로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간 누나를 대신하여 사랑하시는 고아들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기도의 동역자를 보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사역은 기도가 아니면 헤쳐 나갈 수 없는 일이므로. 헨리 조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기고 이별 아이티 고아들 아이티 상황 번씩 누나

2025-01-14

[삶과 믿음] 하늘로 간 기도 동역자

누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12월치고는 따뜻했지만, 잔뜩 흐렸다. 허겁지겁 먼 길을 달려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한 병원 신경과학 중환자실에서 만난 누나는 혼수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여러 개의 주사를 맞고 있었다. 아무 반응이 없는 누나는 기계에 의지하여 숨을 이어갈 뿐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수많은 기계가 시시각각 그의 상태를 점검하는 중에 산소와 알지 못할 약물들이 희망을 희석하더니 끝내 누나는 깨어나지 못했다.   하루를 지나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매형과 가족들이 모여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로 동의했다. 산소호흡기가 제거된 후 14분이 지나자, 누나의 상태를 보여주던 모든 그래프가 수평선으로 바뀌었다. 조금씩 낮아지며 애태우던 숫자들이 파르르 떨며 꺼지더니 병실로 어둠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슬픔보다 더 큰 이별의 무게가 우리를 누르고 있었다. 누나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날까지 친지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보냈다. 워싱턴에 사는 아들은 고모가 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 임종하고, 장례식 전에 집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고모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집에서 받았다며 또 통곡했다.   나보다 세 살 위의 누나는 사십여 년 전에 미국에 이민을 왔다. 그리고 부모님을 초청하고, 우리 형제가 다 미국에 자리를 잡는데 넉넉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신앙심이 깊어 이민 초기에 아버지를 도와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고, 찬양을 좋아하고 잘해서, 집이나 교회에서 찬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회 성도와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해서 인근에 누나의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나가 출석하던 교회는 매년 아이티 후원 헌금을 한다. 지난해 가을, 올해에는 예년보다 많은 헌금이 되었다며, 누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이티 고아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했다. 우리는 새해 1월에 누나의 교회를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누나는 성탄절을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교회 회중 앞에 차갑게 누운 것이다. 장례 예배는 조문객들이 큰 예배당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됐다. 모두 너무 놀라며 한결같이 슬퍼했다. 매형에게도 누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교회의 모든 이들에게 누나의 빈자리는 참 클 것이다. 그러나 누나는 나에게 가장 큰 빈자리를 남기고 갔다.   아이티 사역을 하면서 아내와 어머니와 누나의 기도가 큰 기둥이 되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우리 아이티 사역을 더욱 세세히 묻고 기도했다. 아이티에 가면 가는 대로,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서로 기도의 파트너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로에게 기도의 동반자였던 누나를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작스레 하늘 찬양대로 부르신 것이다.   아이티가 갱단에 의해 폭력적 상황이 되어가고 있을 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누나는 텍스트 메시지로 아이티 상황을 물어왔고, 기도했다. 그렇게 가까이서 기도해 주던 기도의 동역자가 너무 서둘러 하늘로 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누나가 천국에서도 여전히 우리와 아이티 고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준비 안 된 이별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기도의 동역자가 있어 그분들의 기도로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간 누나를 대신하여 사랑하시는 고아들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기도의 동역자를 보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사역은 기도가 아니면 헤쳐 나갈 수 없는 일이므로.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동역자 하늘 기도 동역자 아이티 고아들 하늘 찬양

2025-01-09

[삶과 믿음] 그래도 믿습니다

아이티는 지금 유배지처럼 격리되어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의 민항기 운항 금지 조치가 3개월 연장된 후에, 공항은 문을 열었지만, 민간인의 미국으로 출국도, 아이티로 입국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수도 포토프린스에서 타지로의 이동은 막혀 있다. 마이애미행 비행기가 있는 아이티 북부 캡 헤이션까지는 거액의 비용을 내고 민간 헬기를 이용할 수 있지만 아무나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고립 탓에 아이티는 식량과 생활필수품의 절대적 부족 현상을 겪고 있고, 1100만이 넘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라고 WHO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수십만 명이 기아에 허덕이는 가운데, 갱단의 점령으로 이미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떠돌고, 올해에만 6000명 이상이 갱단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이제는 납치가 얼마나 일어났는지 숫자를 헤아리지도 않고 있다. 몇 개 남지 않은 병원이 갱들의 공격으로 초토화되고, 경찰서는 여전히 공격받고 유엔에서 파견한 경찰도 갱들과의 전투에서 번번이 밀리고 있다.   전 세계의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사이에, 나라는 결딴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리는 총소리에 사람들은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의 공포를 머리에 이고 거리를 뛰어다닌다. 일상이 위협받고 무너진 지가 너무 오래되어 사람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게 되었는데 그사이에 고아원은 고립무원의 지경이 되었다. 늘 부족한 식량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인내를 시험하고 있고 학교는 문을 닫아 아이들은 여전히 뜨거운 햇볕 아래 더디 가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   예수 믿는다고 다 편안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겪는 모든 일은 예수를 믿는 성도도 같이 겪는다. 그런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때로 믿음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고난을 견디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하지만 밤낮으로 콩 볶는 듯한 총소리를 들으며 생존이 위협받는 공포를 고스란히 맨몸으로 견디는 아이티 사람들에게 폭력과 굶주림의 두려움은 믿음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믿음은 상황을 바꾸는 기적의 열쇠가 아닐 수 있다. 그래도 믿음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갱단의 위협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아이티 고아들과 함께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남은 소망의 믿음이 하나님께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시며, 고난 속에서도 함께하시라는 믿음을 우리가 아직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대한 파도 같은 폭력의 공포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끼니의 두려움과 쉬이 떠나지 않는 질병 가운데 쉽게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티의 고아들이 믿음 안에서 고난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상황이 나빠져도, 아니 상황이 나쁘니 더욱, 우리는 우리의 지원을 통해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갱단의 위협 속에서도,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도,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우리가 지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악몽 같은 한 해를 보내는 지금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새해의 소망을 꿈꾸고 있다. 배가 고파도 꿈꾸며 기도할 수 있으니, 우리는 부족한 식량을 간신히 채우며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 그래도 우리는 믿습니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아이티로 입국 아이티 고아들 아이티 북부

2024-12-26

[삶과 믿음] 관심에서 행동으로

어쩌다 만나는 분 중에 아직도 아이티에 다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고 하면 위험해서 어찌하느냐고 염려하기도 하고, 수고한다고 하기도 하고, 아직도 다닌다는 것을 꽤 신기한 일인 듯 여기기도 한다. 많은 분이 우리의 아이티 고아 지원 사역에 관심을 두거나, 우리를 만나면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메일로 보내드리는 소식을 읽는 분들은 자주 안부를 묻기도 하고 뉴스에서라도 아이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생각이 난다며 연락을 하는 분들도 있다.   선교하는 일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겠지만, 그런 관심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 중에 우리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는 분들이 있고, 그 기도가 우리가 아이티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큰 힘이 되고 능력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물어봐 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힘이 날 수밖에 없다. 관심은 사랑을 품고 있고 관심이 있을 때 기도하게 된다. 기도 자체가 관심이기 때문이고, 우리 사역 또한 따듯한 관심 속의 기도로 힘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도는 세상의 많은 일에 관심을 둬야 한다. 그리고 그 관심은 기도로 이어지고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관심을 두고 살펴야 일이 많다. 기후 문제가 그렇고, 여러 나라의 전쟁이 그렇고, 국민 삶의 질을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 같은 정치가 그렇다. 자기가 태어나고 살아가던 땅을 떠나 떠도는 난민이나 아이티 고아들처럼 나라가 아무리 갱단의 폭력으로 두려움의 땅이 되어도 떠날 곳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도 관심을 두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도 우리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 모든 것에 깊은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관심에서 비롯된 기도는 한 발 더 나가 행동으로 이어져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은 아이티 고아이다. 우리는 관심을 두고 기도하며 도와주는 분들의 뜻을 모아 고아들이 먹고 배우며 자라는 일을 돕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기도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는 분들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이들이 위험하고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도 자란다.   예수님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셨다.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직접 다가가셨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예수님은 행동하셨다. 성경은 언제나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로 대표되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가르친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품사는 동사라고 한다. 사랑이란 단순히 마음에 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손과 발을 움직여 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큰 변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는 많은 기회를 만난다.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생각하고 돌보는 것은 단순한 관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난과 고통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한탄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관심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사는 가난한 이들은 단순한 관심을 넘어 적극적인 행동으로 도우라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우리 이웃이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헐벗은 형제자매에게 말로만 따뜻하고 배부르게 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야고보서 2장 15~16절) 이제는 관심에 머물지 말고, 행동으로 나설 때이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관심 행동 아이티 고아들 아이티 이야기 기도 자체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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